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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엔초의 유산

엔초 페라리 서거 35주기를 맞아 창업자의 마지막 유언이었던 페라리의 성장을 살펴 본다.
글: 다니엘레 브레시아니(Daniele Bresciani)

만약 비율로 얘기한다면, 3:13,221 = 20,000: 860,000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1947년 설립된 페라리는 20,000㎡의 생산 공간에서 페라리의 첫 번째 모델, 125 S 2대 그리고 159 S 프로토타입 1대 - 이렇게 총 3 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현재 공장 규모는 그보다 40배 커진 약 860,000㎡ 로, 작년 기준 13,221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물론 숫자만 가지고 얘기를 했지만, 페라리는 직원 수를 포함해 모든 분야에서 확장을 거듭해 왔다. 초기 직원 수는 140명이었지만 현재는 약 5,000명에 이른다.

이 영상은 1988년 엔초 페라리가 세상을 떠난 이후 창립자의 유언에 따라 페라리가 엄청나게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엔초 페라리는 1942년 최초로 건축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비아 아베토네(Via Abetone)의 유서 깊은 출입구 뒤편 창고 부지에서 건설공사를 시작했다. 전시 상황이었다. 원래 기계 공구를 제조하던 공간은 1947년 자동차 제작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 후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고 창출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주조 공장, 생산 라인, 엔진 조립, 물류, 테스트 룸, 섀시 모델 작업장, 사무실 등 페라리를 최첨단 회사로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시설이 해마다 새롭게 만들어졌다.

1972년에는 피오라노 서킷을 오픈했다. 1978년에는 최초의 온-사이트(현장) 페인트 숍이 설립되었고, 1983년에 게스티오네 스로프티바(Gestione Sportiva)는 특수 시설에 있는 트랙으로 이전했다.

왼쪽부터: 1953년 페라리 정문 아치; 1972년 공장 조감도; 1950년 기계 가공 부서; 1974년 피오라노 서킷 건물

1988년 8월 14일 엔초 페라리는 세상을 떠났다. 엔초의 90번째 생일이자 마지막 생일이었던 그 해 2월 18일, 회사에서 그가 남긴 말은 예언처럼 남아있다.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들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페라리는 1990년대 대대적인 확장에 나섰다. 1993년, 신규 주조 공장인 콤포시티(Compositi)와 메카니카 게스(Meccanica Ges)를 건설했다.

1997년부터 약 10년간 저명한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들이 하나 둘 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렌초 피아노(Renzo Piano)의 윈드터널(Wind Tunnel), 마르코 비스콘티(Marco Visconti)의 누오바 메카니카(Nuova Meccanica), 마시밀리아노 퍽사스(Massimiliano Fuksas)의 제품개발센터, 그리고 장 누벨(Jean Nouvel)이 설계한 새로운 생산라인 등이 그것이다.

왼쪽부터: 2008년에 본 페라리 조립 라인; 렌초 피아노가 1997년에 지어진 윈드 터널; 2004년에 지어진 마시밀리아노 퍽사스의 제품개발센터; 2018년에 개장한 디자인 센터; 2021년 완공된 아티비타 스포르티브 GT 센터(Atticità Sportive GT)

2015년에는 새로운 GeS HQ가 문을 열었다. 그 후 2018년 스타일 센터(Style Centre), 2019년 테크니컬 센터(Technical Centre), 2020년 시뮬레이터(Simulator), 2021년 피오라노 트랙에 있는 새로운 아티비타 스포르티브 GT 센터(Attività Sportive GT)가 차례로 문을 열면서 페라리의 창의성이 폭발했다.

가장 학수고대해 온 행사는 1년 내 이뤄질 e빌딩 착공으로, 추후 페라리 전용의 전기 엔진을 제작하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공간에는 페인트 숍처럼 생산에 필수적인 시설이 포함되어 럭셔리 마켓의 핵심 트렌드인 퍼스널라이제이션을 폭넓게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4 agosto,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