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붉은색의 루이스
루이스 해밀턴(Lewis Hamilton)과 나눈 의외의 대화, 오리지널 영화 ‘듄(Dune)’에 대한 이야기. 그는 고(故)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감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천재였고, 시대를 훨씬 앞서간 사람입니다. 아마 당시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어쩌면 루이스 해밀턴은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가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은 인물이자, 통계적으로 포뮬러 원 역사상 가장 성공한 드라이버라는 점이다. 그는 현재까지 105번의 우승과 104번의 폴 포지션, 그리고 무려 7번의 월드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2025년, 그가 스쿠데리아 페라리 HP에 합류하자 모터스포츠 세계는 열광에 휩싸였다. 글로벌 스포츠계의 거대한 두 브랜드가 손잡으며, 한 세대에 한 번 나올 법한 특별한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또한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해 끊임없이 캠페인을 벌여온 인물이자, 변화와 긍정적인 사고를 옹호하는 사람이다. 오늘날처럼 그런 마음가짐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에 더욱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스포츠계의 슈퍼스타면서도 ‘큰 그림’을 명확히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인물이다. 패션부터 영화 제작까지, F1 드라이버 가운데 이렇게 동시에 폭넓은 활동을 펼친 이는 거의 없다. 이러한 창의적 활동들은 그가 F1 이후에도 독보적인 삶을 이어갈 가능성을 보여준다. 해밀턴은 레이싱 드라이버가 어떤 존재일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다.
한평생 페라리의 팬이었던 그는 팀을 위해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피해 피오라노 서킷에 있는 스쿠데리아 내부에서 그를 만났다. 해밀턴은 미소를 지으며 안부를 건넸다. 그와의 악수는 자갈을 으스러뜨릴 듯 강력했다. 그는 비즈니스적인 동시에 따뜻했고, 눈에 보일 정도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페라리는 역사와 상징, 그리고 그 배지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뜻하죠." 루이스가 말한다
페라리 매거진(FM): 처음 페라리 SF-25에 앉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루이스 해밀턴(LH): 음, 저는 지금 제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올해 마흔이 되었는데, 처음 F1 머신에 앉았던 건 스물 한 살 때였죠. TV로 F1을 보면서 최고의 무대에서 달리는 꿈을 꾸던 제가 실제로 머신에 올라 주변의 엔지니어 및 장비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빨간색 차에 올랐을 때 감정이 벅차올랐어요. 스물 한 살 때는 감동 보다는 짜릿한 느낌이 강했고요. 온 몸이 전율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페라리에 몸을 싣는 것은 사랑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다른 차원의 교감이 생기죠.
FM: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껴지나요?
LH: 이곳은 정말 특별합니다. 빨간색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상 중 하나예요. 페라리는 역사와 엠블럼, 그리고 그 상징성으로 정의할 수 있어요. 페라리 모델들은 예술 작품과도 같습니다. 페라리는 이탈리아의 언어, 문화, 음식과도 맞닿아 있어요. 이탈리아인들이 삶에서 보여주는 모든 열정 그 자체이기도 하죠.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문화가 융합되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합류했지만, 여전히 페라리의 중심은 이탈리아에 있습니다. 사실 제가 페라리 팀에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솔직히 문화 차이에 대한 걱정도 있었고요. 하지만 막상 이곳에 와 보니 모두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예요. 서로를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면 다른 것들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FM: 스쿠데리아 페라리 HP는 경쟁 팀들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LH: 다른 팀들은 조금 덜 다채로운 것 같아요. 물론 각자의 장점이 있지만, 이탈리아인들은 본인의 감정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훨씬 더 솔직하게 표현해요. 물론 대부분 좋은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그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데, 음식 이야기를 할 때도 그렇죠. 영국에서 피시 앤 칩스에 대해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으니까요.
FM: 당신과 페라리와의 계약이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했나요?
LH: 페라리와 제가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자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멋지고 긍정적인 점들도 많았지만, 동시에 큰 책임과 무게도 따르죠. 모두가 당장 승리를 기대하지만, ‘로마도 하루 아침에 지어지지 않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잠시 멈추며) 그런데 정확히 얼마나 걸렸죠? 그건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페라리에 올라타는 순간, 사랑에 빠져요.' 루이스가 말한다. '다른 차원의 교감이 생기죠.'
FM: 포뮬러 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 텐데요…
LH: … 사실 그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팀 안에 있어야만 모터스포츠, 특히 F1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요. 외부에서는 이 거대한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죠. 저도 F1에서 오래 활동했지만, 페라리 팀에 와보니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어요. (또 다시 멈추며) 그래서 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준비하고 팀과 함께 일하는지, 매일 어떤 마음으로 임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지가 중요합니다.
FM: 올해는 니키 라우다(Niki Lauda)가 페라리와 함께 첫 챔피언십을 차지한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니키 라우다와 가까운 사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는 당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나요?
LH: 제가 F1에 들어왔을 당시, 제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니키도 그 세계의 일부였죠. 그렇지만 니키는 세 번이나 월드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선수였기에 저는 그를 늘 존경해 왔습니다. 그는 모터 스포츠의 진정한 아이콘 중 한 명이에요. 어느 날 니키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고, 제가 팀(메르세데스)에 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죠. 그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은 나와 똑같아요. 뼛속까지 레이서니까요.” 그 만남 이후부터 장벽이 허물어졌고, 그가 저에 대해 가졌을지 모를 고정관념도 사라졌어요. 그 뒤로는 함께 경기를 보러 다니기도 했고, 그가 직접 비행기를 조종해 이곳저곳으로 데려다주기도 했어요.
FM: 그를 가르쳤나요?
LH: 서로가 서로에게 배웠던 것 같아요. 그는 언제나 최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함께 있을 때면 늘 웃음이 넘쳐났어요. 니키는 마지막 순간까지 투지를 보여준 사람이었는데, 병마와 치열하게 싸우던 그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는 종종 영상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그는 끝까지 “곧 돌아갈거야”라면서 병을 이겨내고자 했어요. 그런 그의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FM: F1 드라이버로서 모터 스포츠의 역사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되나요?
LH: 아는 것이 힘이죠. 적어도 불리하게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세바스찬(베텔)의 경우 저보다 훨씬 더 F1 역사에 해박합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자동차 전반에 관심이 많았지만, 동시에 여러 분야에도 열정을 쏟았어요. 음악은 언제나 저에게 큰 열정이었고, 모든 창의적인 활동은 하나의 탈출구였어요. 지금 제가 입는 옷도 대부분 직접 디자인한 것이에요.
루이스 해밀턴은 페라리 26SS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를 착용했다. 이 수트는 델라베 리넨 트윌 소재로 제작되었으며, 안에는 가벼운 니트웨어 상의를 매치했다
FM: 이러한 외부 활동들이 경기에 대한 집중을 방해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답하나요?
LH: 그건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나 어떠한 이유로든 집중력을 잃을 때가 있죠.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어디에 쓰고, 어떻게 균형을 찾는지가 중요해요. 창의적인 균형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모든 시간을 일에만 쏟을 수는 없어요. 너무 불행해지니까요. 나에게 영감을 주고 힘을 북돋아주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죠.
FM: 당신이 운영하는 미션 44 재단(Mission 44 Foundation)은 다양성을 증진하고, 학교 교육 및 기회 개선을 위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성과에 만족하나요?
LH: 그 일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잠시 말을 멈추며) 운이 좋게도 넬슨 만델라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싸웠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끌어야 합니다. 일부 사람들이 비열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 똑같이 대응하며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요. 미셸 오바마의 말처럼 ‘그들이 낮게 가면 우리는 높이 가야 한다(They go low, we go high)’는 것이죠. 저는 잠재적 파트너와 만날 때마다 그들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이것은 제 평생 이어질 과제이고, 그 과정에서 다른 어려움들도 함께 맞닥뜨리게 되겠죠.
FM: 영화 제작사 ‘던 아폴로 필름스(Dawn Apollo Films)’를 설립하셨어요. 최근에 개봉한 ‘F1 더 무비’의 주요 제작사로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축하드립니다.
LH: 감사합니다.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영화에 직접 참여하고, 제작 과정 전반에 깊이 관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예요. 조셉 코신스키(Joseph Kosinski) 감독이 저에게 “이 영화를 제작하고 싶은데, 브래드 피트를 꼭 섭외하고 싶다”고 했을 당시에는 그의 출연이 확정되기 전이였죠. 저는 그 사이를 잇는 역할을 했고, 결국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이 포함될 만큼 깊이 관여하게 되었죠. 편집 과정에도 함께했는데, 제 노트북으로 영화의 일부 장면을 보고 피드백을 보내기도 했어요. 산타모니카에 있는 한스 짐머(Hans Zimmer)의 멋진 스튜디오에서 직접 만나기도 했죠. 지난 4년은 저에게 큰 특권이었어요.
FM: 앞으로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많이 있나요?
LH: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어요. 아직 구체화하는 과정이지만, 저는 스토리텔링에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일수록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코미디를 좋아해서 한 편의 TV쇼 아이디어가 있고, 몇 가지 애니메이션 영화 아이디어도 구체화하고 있어요. <F1: 더 무비> 이후로 수많은 제안이 쏟아져 정신이 없을 정도예요. 하지만 프로젝트의 개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죠. 쿠엔틴 타라티노(Quentin Tarantino)처럼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