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페라리와 함께한 10번의 시즌

글: 다니엘레 브레시아니Daniele Bresciani / 사진: 안드레아 프라체타(Andrea Frazzetta)

샤를 르클레르가 처음 페라리 마라넬로 본사를 방문했을 때, 그는 정문 앞에 그대로 서 있어야만 했다. “2010년 봄이었어요. 그때 저는 줄스 비앙키(Jules Bianchi)와 함께 피오라노에 갔습니다. 당시 줄스는 페라리 드라이버 아카데미 소속이었거든요.” 샤를이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줄스는 헬스장에서 체력 테스트를 받아야 했는데, 정문에 도착하자 경비원이 제 신원이 등록되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게다가 저는 미성년자였죠. 겨우 12살이었으니까요. 결국 주차장에 혼자 남겨졌고,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문 너머로 어떤 모습이 펼쳐져 있을지 상상밖에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다행히 이 경험이 그에게 별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몇 년 뒤 샤를은 그날의 아쉬움을 멋지게 만회했다. 2016년 5월 10일, 그는 이날을 아직도 ‘인생의 최고의 날 중 하루’로 기억한다. 6년 전 출입을 거부당했던 바로 그 서킷에서, 이번에는 부모님의 응원을 받으며 페라리 드라이버 아카데미 소속으로 처음 붉은색 레이싱 슈트를 입고 트랙에 섰다. 그는 F14 T를 타고 300km를 주행했는데, 이는 그랑프리 주말의 프리 프랙티스 세션(free practice session)에 출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주행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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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은 페라리 드라이버 아카데미를 통해 드라이버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었다.

“안토니오 푸오코(Antonio Fuoco), 줄리아노 알레시(Giuliano Alesi)를 비롯한 친구들과의 우정도 그곳에서 시작됐어요. 지금도 여전히 끈끈한 사이죠. 저희 숙소가 피오라노 서킷에 있는 작은 건물의 꼭대기 층에 있었는데, 저녁마다 엔초 페라리가 머물렀던 사무실 앞을 지나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정이 벅차 올랐어요. 돌이켜보면 시간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 같습니다.”

어느새 마라넬로는 샤를에게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 되었다. “이곳에 제 커리어가 있고, 친구들도 있어요. 저에게 페라리는 단순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나 멋진 자동차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 정말 좋아요. 그리고 한 대의 차량이 초기 콘셉트, 설계, 조립 과정을 거쳐 완성되어 도로나 트랙 위를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을 사랑합니다. 그 감동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2025년은 샤를 르클레르가 페라리 드라이버로서 맞는10번째 시즌이다. 다소 아쉬운 출발을 보였지만,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해이기도 하다. “SF-25는 큰 잠재력을 지닌 머신이고, 이를 이끌어내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샤를이 말했다. “루이스가 중국 스프린트에서 우승한 것을 보면, 이 패키지를 최대한 활용했을 때 선두권 경쟁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우리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매 경기에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아직 SF-25의 성능을 100% 활용하려면 배워야 할 것이 많고, 우승을 위해서는 0.2초가량의 격차를 줄여야 하죠. 하지만 저는 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고, 머지않아 맥라렌, 레드불, 메르세데스와 맞설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설 것이라고 믿습니다.”

F2 챔피언에서 F1 우승, 그리고 이제는 루이스와의 팀 메이트까지 샤를은 정말 대단한 여정을 달려왔다

샤를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처음부터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페라리 드라이버가 되는 것은 그저 꿈 같은 일이었다. “첫해에는 GP3에 출전했고, 2017년에 F2 챔피언을 차지했어요. 하지만 큰 승리를 거둔 이들을 향해, 언제든 실수하기만을 기다리는 시선이 얼마나 많은 지 아세요?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2018년 자우버(Sauber) 소속으로 F1에 데뷔했을 때 조차요. F2에서 F1으로 올라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의 도약이에요. 차부터 팀 운영 방식까지 모든 것이 다르고, 당연히 부담감도 훨씬 커지죠.”

실제로 2019년, 꿈에 그리던 페라리 드라이버가 되면서 샤를의 부담감은 더욱 커졌다. “당시 시즌에서 많은 것을 배웠죠. 예를 들어 테스트 세션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지 말 것.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예선과 본선이기 때문이죠. 바쿠(Baku) 예선 때처럼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피할 수 있었던 실수를 하게 된다는 것도 배웠죠. 하지만 같은 해 바레인에서 제 인생 첫 폴 포지션을 달성했어요. 이튿날 레이스도 순조롭게 출발했지만, 마지막에 파워 유닛 문제로 우승을 놓치고 말았어요. 결국 저는 몇 달을 더 기다린 끝에 스파(Spa)에서 처음으로 포디움 가장 높은 곳에 올랐고, 그 다음주 몬자에서도 누구도 잊을 수 없는 붉은 물결 앞에서 또 한 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가 페라리 드라이버 아카데미에 합류한 지 10년, 샤를은 여전히 변함없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 특별한 감정이 지난해 샤를에게 다시 한번 찾아왔다.

“먼저 제 고향인 모나코에서 우승했습니다. 그동안 모나코는 마치 저주가 걸린 레이스처럼 느껴졌어요. 예선이든 본선이든 항상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습니다. 폴 포지션을 차지했고, 시작부터 끝까지 선두를 유지했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 수천 번은 달려봤을 그 도로에서 우승한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입니다. 그래서인지 ‘다시 몬자에서 우승한다면 이번만큼의 감동은 없을 것 같다’ 싶었어요.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몬자는 몬자니까요. 포디움 위에서 내려다보면 페라리를 응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그 모습에 심장이 저절로 뛰어요.”

이번 시즌의 초반, 샤를은 다소 묘한 위치에 서 있다. 페라리 팀에서 가장 젊은 드라이버이지만, 동시에 고참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F1에서 저는 항상 훌륭한 팀 동료들과 함께했습니다. 먼저 세바스찬(베텔)은 정말 성실한 선수였고,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이후 카를로스(사인츠)와는 4년을 함께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빠르게 적응하는 그의 능력이 늘 부러웠어요. 그리고 이제는 루이스(해밀턴)과 함께하고 있죠. 그는 독보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이자, 모터스포츠의 전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