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디노 60주년: 전설의 탄생
1965년 파리 모터쇼에서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과 순수한 조형미로 관람객들을 매료했던 디노가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이했다. 미드리어 V6 엔진을 탑재한 최초의 양산형 페라리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독보적인 실루엣을 완성하기 위한 일련의 선택들 그리고 프로토타입의 탄생에 깃든 예술적이고 기술적이며 장인정신이 집약된 과정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60년이 지난 지금, 피에트로 스트로파(Pietro Stroppa)가 당시의 이야기를 정교하고 통찰력 있는 스케치로 되살려냈다.
스트로파는 베르토네(Bertone)에서 당시 젊은 신예 디자이너였던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의 어시스턴트로 자동차 인테리어 디자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피닌파리나로 이직하며, 브로바로네(Brovarone)와 마틴(Martin), 피오라반티(Fioravanti.) 등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마스케로네 구조 위에 전통적인 판금 기법으로 다듬어져 탄생한 디노의 형태는 세심하고도 정교한 장인정신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그는 디노 프로젝트의 첫 브리핑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디자인팀은 이 프로젝트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세르지오 피닌파리나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다. 회의는 30분 내외로 짧게 진행되었는데, 이때 기존의 프런트 엔진 V12 페라리 모델과는 완전히 상반된 기계적 구성(n5.JPG)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몇 주 뒤 최종안이 결정됐다. 알도 브로바로네(Aldo Brovarone)가 제안한 디자인으로, 둥글고 유려하게 흐르는 프런트 윙과 높이 솟은 뒤 과감하게 끊기는 테일이 돋보이는 우아한 베를리네타였다. 낮은 루프라인과 넓은 파노라믹 윈드스크린, 프런트 엔진의 구조적 제약에서 벗어나 지면을 향해 날렵하게 떨어지는 보닛 라인 덕분에, 디노는 더욱 역동적인 비율과 우수한 전방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초기 콘셉트에는 몇 차례의 수정이 이뤄졌다. 엔초는 물고기 입 모양의 공기 흡입구가 ‘지나치게 페라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전면부는 그릴을 없앤 매끈한 노즈로 변경되었고, 양옆으로 플렉시 글라스 커버의 트윈 헤드램프가 배치됐다. 또한 여섯 개의 인테이크 트럼펫을 감싸 안는 형태의 초기 리어 윈도우 대신, 콕핏과 테일을 잇는 핀(fin) 라인을 따라 흐르는 오목한 반원형 윈도우가 적용됐다.
스트로파의 스케치에는 디자이너로서의 예술적 감각과 기술적 디테일에 대한 통찰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바로 이 시점부터 프로토타입 제작과정이 시작됐다. 먼저 차량의 전체적인 비율을 정립하기 위해 측면, 전면, 후면, 평면 등 네 가지 모습을 담은 1:10 스케일 모델이 제작됐다(n8). 스트로파는 “이때부터 순수한 예술의 영역을 떠나, 기하학적 설계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후 모든 디자인 요소의 치수를 촘촘한 그리드로 표시한 실물 크기의 1:1 도면이 완성됐다(n10).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프로토타입 제작에 착수할 수 있었다.
“먼저 워크숍의 모델러(modellers)들이 목재로 모델의 단면들을 제작했습니다(n11). 빵을 여러 조각으로 자른 뒤 합치면 다시 원래의 모양이 되겠죠. 하지만 여기서 작업은 그 반대로 진행됐어요. 단면들을 먼저 만들고, 그것들을 하나로 결합해 형태를 완성해 나가는 방식이었죠. 이 구조물이 바로 마스케로네(mascherone)입니다. 차량의 라인과 볼륨감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실물 모형, 마케트(maquette)인 것이죠(n12). 이 프레임은 레진으로 채워지고(n13) 다듬어진 뒤, 차체 제작을 위한 형틀로 활용되었습니다. 판금 장인들은 이 형틀에 맞춰 철판과 알루미늄 시트를 수작업으로 성형해 차체를 완성했어요(n16). 마스케로네 주변으로 차체 패널 조립의 기준점이 될 케이지가 설치된 후(n14 및 n15), 페라리가 제공한 섀시 위에 장착되었죠(n17). 이 모든 구조물은 ‘마블(marble)’이라 불리는 작업대 위에 안착되었는데, 바닥에는 휠의 정확한 위치를 포함해 차량 제작에 필요한 모든 핵심 좌표가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스트로파가 설명했다.
이 과정은 매우 복잡했지만,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디자이너들은 거대한 작업대 위에서 일했고, 필요한 수치 계산은 슬라이드 룰(slide rules, 아날로그식 계산 도구)을 통해 풀어냈다. 장인들은 각 요소가 빈틈없이 맞물리도록 목재를 깎아 세부 부품을 제작했고, 판금 장인들은 망치로 금속을 두드리며 형태를 잡아냈다.
디노는 시대를 앞선 현대적인 조형미와 독보적인 개성으로, 여전히 역동성과 스타일, 엔지니어링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걸작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