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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글: 리차드 미든(Richard Meaden) / 사진: 로베르토 카레르(Roberto Carrer)

전통과 기술은 종종 상반된 개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요소는 페라리 스페셜 시리즈 모델에서 언제나 강력한 조화를 이루어 왔다. 2026 탑기어 어워드에서 ‘올해의 하이퍼카’로 선정된 F80은 이러한 조화가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구현된 모델이다.

날렵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실루엣을 지닌 F80은 페라리의 전설적인 슈퍼카 계보를 잇는 여섯 번째 모델로, 레이스카의 압도적인 기능성과 유려한 조형미를 결합했다. 이러한 감성은 실내로도 이어진다. ‘1+’ 콘셉트를 적용해 최적의 공기역학 효율성을 확보하면서도, 운전자와 동승자 모두를 위한 특별한 콕핏을 완성했다.

F80의 특징은 최첨단 자동차 기술로 정의할 수 있다. 차량의 놀라운 성능은 이러한 기술적 기반에서 비롯된다. 혹자는 페라리가 포뮬러 원 및 세계 내구 챔피언십 프로그램 기술을 접목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F80은 엄격한 규제의 한계를 넘어, 진정한 의미의 현대적 슈퍼카로 태어났다. 철저히 공도 주행을 목적으로 설계되었지만, 트랙에서도 압도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모델이다.

탑기어 매거진이 선정한 올해의 우승 차량인 F80은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진보한 페라리로 1,200cv 을 가진 르망과 F1 기술의 결합체다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안에 위치한 미사노(Misano)는 이 새로운 슈퍼카의 성능을 경험하기에 완벽한 장소다. 타이트한 헤어핀과 긴 직선 구간, 고속 코너, 까다로운 제동 구간이 결합되어 F80의 강점을 온전히 끌어낼 수 있는 곳이다.

최고출력 1,200마력(cv), 최고속도 시속 350km의 슈퍼카로 서킷을 달리는 것은 으레 위압감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F80은 놀라울 만큼 다루기 쉽다. 도전의 핵심은 완성도 높은 머신을 다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동 지점을 극도로 늦추고 높은 속도로 코너에 진입할 수 있는 차량의 역량을 온전히 신뢰하는데 있다.

F80도 운전자와 마찬가지로 주행 환경에 적응한다. 새롭게 적용된 부스트 최적화 시스템을 통해 서킷의 특성을 학습하고 코너를 분석함으로써,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의 에너지를 가장 효과적인 지점에 분배한다. 퍼포먼스 모드에서는 배터리 출력과 회생 제동을 정교하게 조율해, 이어지는 랩에서도 최상의 성능이 유지되도록 지원한다. 퀄리파잉 모드에서는 한 바퀴를 집중 공략하기 위해 사용 가능한 모든 에너지를 투입한다.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내연기관과 배터리의 출력이 함께 뿜어내는 강력한 가속이 코너 탈출 구간에서 폭발적으로 이어진다. 사운드트랙 또한 인상적이다. V6 특유의 거친 음색은 9,200rpm 한계치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날카롭게 치솟는다. 다음 기어로 패들을 당기는 순간, DCT가 변속을 체결하며 마치 총성과도 같은 또렷한 파열음이 터져 나온다.

넓게 굽어지는 커브와 긴 직선 구간, 위협적인 제동 구역을 가진 미사노 서킷은 V6 하이브리드 슈퍼카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한다

제동 구간에서의 감각도 압도적이다. F80에 탑재된 신형 브렘보(Brembo) CCM-R 플러스 브레이크와 ABS 에보 컨트롤 시스템의 결합으로 강력한 제동력을 발휘한다. 제동 중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종방향 및 횡방향 g-포스를 견뎌내면서도, 동시에 전륜은 지정한 라인을 정확히 지켜 나가고 후륜은 마치 한계가 없는 듯한 그립으로 차체를 지탱한다. 핵심은 액티브 서스펜션이다. 푸로산게에 처음 사용됐던 멀티매틱 시스템을 한층 발전시킨 것으로, 제동 시 차체 롤과 다이브(Dive, 급제동시 차량의 앞쪽이 쏠리는 현상)를 거의 완벽하게 제거한다. 이와 함께 서스펜션은 최소한의 움직임만 허용해, 차량의 격렬한 움직임과 남아 있는 성능의 한계치를 운전자가 직관적으로 파악하도록 돕는다.

F80의 기반이 되는 마지막 핵심 기술은 능동형 공기역학 솔루션이다. 499P하이퍼카 프로그램에서 얻은 기술적 경험을 바탕으로, F80은 시속 250km에서 1,050kg의 다운포스를 생성한다. 이는 전면의 트라이플레인 S-덕트와 액티브 리버스 거니 플랩, 다운포스 극대화 및 항력 감소를 위해 최대 11도까지 각도 조절이 가능한 대형 액티브 리어 윙이 결합된 결과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납득하기까지 몇 바퀴의 예열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가속 페달에서 발을 거의 떼지 않은 채 미사노의 초고속 코너에 진입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그 순간 F80은 공도용 미쉐린 파일럿 컵 2R 타이어가 아니라 마치 레이싱 슬릭 타이어를 장착한 것처럼, 시속 250km에서도 완벽한 안정감을 유지하며 코너를 돌파한다.

페라리가 스페셜 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인 GTO를 출시한지 어느덧 40여년이 흘렀다. 그 이후 F40, F50 엔초, 라페라리, 그리고 현재의 F80을 포함한 모든 차량이 페라리 양산 모델의 미래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이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